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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로프공이 듣는 추락의 소리…사람마다 다른 마지막 무게 · 30년 현장이 증언한 것

Justin Parker 읽는 시간 약 7분

30년 로프공이 듣는 추락의 소리…사람마다 다른 마지막 무게 · 30년 현장이 증언한 것

30년 로프공이 듣는 추락의 소리…사람마다 다른 마지막 무게 · 30년 현장이 증언한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한 마디.

30년 동안 건물 외벽에 몸을 맡겨 온 사람이
그의 귀로 들려오는 일과를 털어놓았다. 장비와 생명체 사이에서 그가 구분해내는 소리의 차이는
아침ロープ(줄)에 몸을 싣고 허공을 오가는 이들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첫 만남, 30분짜리 수업과 5층짜리 유리창

1994년 무렵, 건물 안에서 청소와 시설 관리를 하던 박계진씨(58)는 한 닭의 돈을 더 보탤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으로 외벽 작업에 첫 발을 들였다. 다만 정식 교육기관을 찾기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그가 받은 첫 수업은 컨테이너 위에서 친구로부터 전달받은 30분짜리 짧은 입문이었다.

“컨테이너에서 30분 정도 배웠어요.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친구와 5층짜리 건물 유리창을 닦으러 갔습니다.”

짧은 교육 뒤 곧바로 수십 미터 높이의 외벽에 매달려 하루를 버텨낸 그는 일주일가량 온몸에 근육통을 달고 살았다. 줄을 감으면 멈추고 풀면 내려가는 그 단순한 원리가 그의 인생을 외벽 작업자로 고정시켰다. 한 달이 1년이 되고, 1년이 10년이 되고,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달비계, 흔들리는 의자 위의 30년

달비계는 알루미늄 의자에 앉아 굵은 PP(폴리프로필렌) 로프에 몸을 싣고 건물 외벽을 따라 내려가며 도색, 균열 보수, 유리창 청소 등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줄을 감아 멈추고 풀어 내려가는 단순한 구조였기에 당시 현장에서는 옥상 고정 구조물이 없을 경우 물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통 여러 개를 묶어 무게를 만들고 여기에 로프를 연결해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박씨가 회상하는 과거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안전장치의 부재를 말해준다. 그는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출 수 없었고, 그래서 위험을 알면서도 줄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단순한 도구 하나가 30년 동안 그의 직업을 지탱해 왔다.

▍다섯 명이 흩어졌던 그날의 소리

20여 년 전, 박씨를 포함한 작업자 5명은 한 건물의 외벽에서 동·서·남·북 네 면으로 나뉘어 각각 로프에 몸을 맡긴 채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 들려온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그의 직감을 울렸다. 사고를 직감한 그가 구조 요청을 마치고 건물 모퉁이를 돌아 도착한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진 동료의 모습이었다.

그의 몸은 그날 이후부터 새로운 반응을 학습했다.

“지금도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다른 사람은 구분하지 못할 수 있지만 저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떨어지는 소리와 장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어요.”

장비와 생명체를 가르는 귀로 그는 아침 외벽에 몸을 싣는다. 단순히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누구의 마지막이었는지를 가르는 무게가 그의 청각 안에 남아 있다.

▍여전히 그대로인 방식, 그대로인 사고

30년이 흘렀지만 현장의 작업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배를 따라다니며 기술을 익히는 관행은 여전히 이어졌고, 별도 교육 없이 이틀 만에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경기 용인의 한 교육장에서 만난 하용수씨(31) 역시 지난해 외벽 시공을 배울 당시 로프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현장 경험부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급한 곳은 초보자에게 두 시간 정도 짧게 설명한 뒤 빠르면 하루나 이틀 만에 현장에 들어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처음 로프를 잡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자취를 감추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화장실에 간다는 말 뒤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간절함 하나로 줄을 탔고, 이후 6개월의 달비계 경험을 거쳐 사비로 다른 작업 방식(자일)을 익혔다.

“하루 일당 15만 원을 벌려고 제 목숨을 담보로 걸었던 셈이죠. 그때는 먹고살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줄여지는 시간, 줄여지는 안전

두 작업자가 공통으로 꼽은 사고의 배경에는 하도급 구조에 따른 속도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외벽 작업은 여러 단계의 업체를 거쳐 현장에 도달하기 때문에 실제 작업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줄어든다. 제한된 공사비 안에서 수익을 확보하려면 작업 기간을 줄이고 속도를 높여야 했고, 이는 곧 안전 절차를 생략하는 압박으로 직결됐다.

박씨는 작업 위치를 옮길 때마다 작업용 로프뿐 아니라 별도의 안전 로프까지 옮겨 설치해야 하는데, 한 번에 10분 안팎이 더 걸리는 이 과정이 하루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면 전체 작업 시간이 1시간 이상 늘어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 번은 10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그런데 그걸 하루 종일 반복하면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면서 안전 로프를 생략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게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거죠.”

2017년 경남 양산에서는 외벽 작업 중 주민이 작업줄을 끊어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작업용 줄 외에 설치해야 하는 예비 구명줄이 없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박씨는 그 사건을 떠올리며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장치의 본질적 필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여전히 가장 큰 재해, 떨어짐

정부는 올해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공개하며 떨어짐으로 인한 사망자 84명 이 전체 사고사망자의 33.2%에 달한다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사망자가 105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부도 달비계 작업을 사고가 반복되는 고위험 작업으로 지목하며 지역별 협회와 구인 사이트 등을 통한 집중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두 작업자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안전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현장의 작업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후배에게 남기는 첫 번째 말

박씨는 지금도 현장에 서서 후배 작업자들을 가르친다. 자신처럼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외벽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현장에 처음 나서게 되는 후배들에게 그가 늘 하는 첫 마디는 같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하씨 역시 언젠가 자신의 회사를 세워 젊은 작업자들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선배의 한마디에 목숨을 맡기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하더라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30년간 수십 미터 외벽에 매달려 온 그는 끝 자신을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 말한다. 잘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재수가 좋았다는 말은, 그가 외벽에 몸을 싣는 이유와 동시에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그대로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줄 위에서 묵묵히 일과를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하루와 사고의 경계, 그 사이의 무게를 기록한다.

Justin Parker

Justin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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