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의 기대주 유해란이 202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 여자오픈에서 강력한 시동을 걸었다.
총상금 1000만 달러 규모의 빅 무대,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에 자리한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유해란은 버디 6개와 보기 1개를 묶으며 5언더파 66타를 적어냈다.
이 성적표는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태국의 지노 티띠꾼(7언더파 64타)에 2타 뒤진 공동 2위라는 쾌거를 안겼다.
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유해란의 페이스가 살아났다.
1번홀(파3)에서 첫 버디를 잡으며 흐름을 끌어올렸고, 4번홀(파4)에서도 정확한 샷으로 버디를 추가했다.
6번홀과 7번홀(파5)에서는 연속 버디를 연달아 낚으며 전반 9홀 동안 4언더파라는 놀라운 스코어를 작성했다.
후반 들어 잠시 주춤하는 장면도 있었다.
15번홀(파4)에서 이날 첫 보기를 기록했지만, 곧바로 16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흔들림을 털어냈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추가하면서 깔끔하게 5언더파 66타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올 시즌 메이저 2연승을 일궈낸 유해란답게, 이번 경기에서도 흔들림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가 끝난 뒤 유해란은 “오늘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침 라운드 전에 비가 조금 내려서 제발 오늘은 비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안도의 표정을 드러냈다.
이어 “날씨는 꽤 좋았다. 바람은 여전히 강했지만 플레이하기 좋은 바람이었다. 내 골프도 좋았고 마지막 홀을 버디로 마쳐 정말 기쁘다”고 덧붙였다.
2001년생 유해란은 올 시즌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현재 CME 글로브 레이스 2위, 여자골프 세계랭킹 3위라는 눈부신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출전한 12개 대회 가운데 11차례 컷을 통과했고 8차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올 시즌 거둔 2승이 모두 메이저 무대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지난달 열린 시즌 3번째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윤이나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이달 중순에는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을 연장 첫 홀에서 제압하며 메이저 2연승을 달성했다.
물론 올해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해란은 지난달 초 한국에서 의료 시술을 받으며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인 US 여자오픈 출전을 포기했고, 한 달 가까운 휴식을 취하며 몸을 다잡아야 했다.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를 건너뛴 것은 아쉬운 선택이었지만, 이번 휴식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위한 최고의 수술이었다는 평가다.
복귀 직후 곧바로 메이저 2연승을 일궈냈고, 지금까지 커리어 최고 수준인 경기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라운드 역시 메이저 우승과 다르지 않은 여유로운 플레이였다.
깊은 포트 벙커가 곳곳에 도사린 까다로운 링크스 코스에서도 버디 6개를 잡아낸 것은 최근 메이저 2연승을 통해 얻은 확신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유해란은 “메이저 우승을 하기 전에는 압박감이 정말 컸다. 메이저에서 꼭 한 번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고 과거의 마음을 되돌아봤다.
그는 “그래서 코스에서 너무 힘을 주며 플레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훨씬 차분해졌다. 라운드가 끝난 뒤를 생각하면서 편하게 플레이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골프가 정말 좋아진 것 같다. 지금은 정말 마음이 자유롭다”고 덧붙였다.
남은 사흘 동안 현재 흐름을 이어간다면 따라올 또렷한 기록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올해 메이저 2승씩을 나눠 가진 미국의 넬리 코다와 경쟁 중인 롤렉스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 수상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게다가 우승할 경우 2013년 박인비 이후 12년 만으로 한 시즌 메이저 3승을 달성하는 LPGA 투어 선수가 된다.
LPGA 역사에서도 박인비(2013년), 팻 브래들리(1986년), 미키 라이트(1961년), 베이브 자하리아스(1950년)에 이어 역대 5번째 대기록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참고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는 한 시즌 메이저 3승을 달성한 선수가 타이거 우즈(2000년)와 벤 호건(1953년) 단 두 명뿐이다.
또한 코다의 결과에 따라 올해의 선수 포인트 경쟁에서도 격차를 크게 좁힐 수 있다.
현재 유해란은 세계랭킹 1위 코다에 73점 뒤져 있다.
다만 유해란은 54홀이 아직 남은 상황에서 우승을 입에 올리는 것은 의미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시시각각 변수가 생기는 링크스 코스의 특성상 남은 라운드에서도 자신만의 플레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유해란은 “링크스 코스는 정말 어렵다고 느껴서 우승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다”
며 “오늘 점수는 좋았지만 아직 사흘이나 남았고 메이저 대회다. 계속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면서 우승보다는 골프를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선수들의 1라운드 성적도 엇갈렸다.
임진희와 주수빈, 아마추어 양윤서는 1언더파 70타로 공동 17위에 이름을 올렸고, 강민지는 이븐파 71타로 공동 26위에 자리했다.
지난주 ISPS 한다 스코틀랜드 여자오픈에서 10년 만에 통산 2승을 일궈낸 신지은은 양희영, 김세영, 이미향과 함께 1오버파 72타 공동 37위로 첫 라운드를 마쳤다.
올해 우승은 없지만 안정적인 성적을 이어가고 있는 윤이나는 3오버파 74타 공동 75위, 올해 2승을 거둔 김효주는 4오버파 75타 공동 90위로 컷 탈락 위기에 몰렸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1인자인 김민솔도 공동 90위를 기록하면서 2라운드 분전이 불가피해졌다.
KLPGA 투어 상금 랭킹 3위 김민선은 3오버파 공동 75위에 자리했다.
유해란과 각종 타이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코다는 2오버파 73타 공동 53위로 다소 느린 출발을 보임에 따라, 이번 AIG 여자오픈은 최고의 무대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