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미디어 기업 연쇄 해킹 사태, 보안 시스템 한계 드러나
국내 주요 기업들이 연이어 해킹 공격을 받으면서 고객들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노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해커들의 공격 방식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지만, 기업들의 보안 대응 능력은 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편의점 택배 서비스까지 뚫렸다
6월 초, 전국 편의점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대형 유통 기업이 해킹 피해를 입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4일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자가 무단으로 시스템에 침투해 회원 정보를 빼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기업은 즉시 관련 기관에 신고를 완료했으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중이다.
유출된 정보에는 온라인 회원들의 계정 정보, 실명, 생일, 성별, 본인 인증값, 거주지 주소, 전자우편 주소, 휴대폰 번호 등이 포함됐다. 다만 택배 발송 시 입력한 수령인 등 제3자의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예외 아냐
이보다 앞서 6월 3일에는 국내 주요 영상 플랫폼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회원들의 계정명, 실명, 생년월일, 성별, 본인 인증 고유값 등이 외부로 노출됐다.
특히 본인 인증 고유값은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개인 식별 정보로, 다른 경로로 유출된 자료와 결합될 경우 명의 도용 등 추가 피해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올해만 벌써 수백 건, 신고 급증세
올해 들어 교육, 스포츠, 외국어 서비스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 관계 기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개인정보 유출 신고 건수는 447건으로 전년 대비 45.6%나 증가했다.
보안 인력 부족, 투자 감소가 원인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취약한 보안 역량이 지목되고 있다. 글로벌 기술 기업의 조사 결과, 국내 기업 97%가 보안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또한 전체 정보 기술 예산 중 보안에 10% 이상을 투입하는 기업은 33%에 그쳤으며, 이는 전년보다 오히려 7%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정부 부처가 실시한 실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직원 10명 이상 기업 5,500곳과 인터넷 이용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보안 예산을 따로 편성해 집행하는 기업은 절반 정도인 54.8%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예산은 기존 시스템 유지·보수나 감시 카메라 설치 등 기본적인 관리 수준에 머물렀다.
인공지능 해킹 시대, 기존 보안 체계로는 버틸 수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해킹 수법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어 보안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월 회의에서 “최근 고성능 보안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모델이 공개되면서 사이버 보안 분야가 다시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며 “수십 년간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보안 시스템이 손쉽게 무력화될 수 있어 기존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
정부도 강력한 제재 카드 꺼내 들어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도 제도 정비에 나섰다. 올해 9월 11일부터 시행되는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 개정안은 반복적이거나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 행위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보안 투자에 대한 혜택 확대, 유출 가능성 사전 통지 제도 도입, 대표와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의 책임 강화 등을 통해 기업들의 사전 예방 의무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전문가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핵심”
전문가들은 보안 투자를 대폭 늘려 사전 예방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 개인정보 보호 담당 부서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보안 예산과 전문 인력 확보가 필수”라며 “공공기관은 전담 인력과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민간기업은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를 중심으로 대응 체계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외부 협력 업체를 통한 유출 위험도 커지고 있는 만큼 개인정보 처리 전 과정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기업들이 보안을 단순한 비용이 아닌 필수 투자로 인식하고, 전문 인력 확보와 시스템 강화에 적극 나서야만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