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살인사건 파문…경찰 내부 비위 드러나며 조직 신뢰 추락
검찰청 해체가 확정된 이후 경찰은 줄곧 ‘보완수사권 폐지’를 외쳐왔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어도 될 만큼 경찰의 수사 역량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물론 여당, 시민단체, 시민들까지 같은 목소리를 냈다. 경찰의 ‘공룡화’를 우려하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검찰 해체 기조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중수청 출범을 3개월 앞둔 지금,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경찰 스스로가 발을 걸어 넘어지고 만 것이다.
▼ 사건의 발단, 광주 여고생 살인
어린이날인 지난 5월,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가해자는 23세의 장윤기 씨로, 살인·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잇따라 드러났다. 범행 당일 인적이 드문 곳에 SUV 차량을 주차하고 조수석 뒷문을 열어둔 뒤, 피해 여학생을 등 뒤에서 목을 감아 제압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범행 직후 조수석 뒷문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 피해자를 묶기 위한 케이블 타이까지 검찰이 차례로 발견했다. 반면 경찰은 6주가 지난 시점까지 핵심 증거를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 아버지는 현직 경찰 경감
사건의 본질을 흔든 결정적 변수는 가해자의 아버지다. 현직 경찰 경감인 장 씨가 아들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내부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사건 발생 4일 후 아버지는 아들의 자취방을 찾아 내부에 있던 리얼돌을 여러 조각으로 해체했다. 범인이 사용한 구형 휴대전화와 소지품도 불에 태워 사라졌다.
자취방 주소와 비밀번호를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은 범인의 아버지가 어떻게 정보에 접근했느냐는 점에서 경찰 내부 유착 논란이 일었다. 수사관 입회 하에 아버지와 아들의 통화를 연결해줬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수사팀 조사 과정에서 “서장이 강간살인 적용을 막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어린 학생이 강간을 목적으로 한 살인마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자칫 경찰의 봐주기 수사로 우발적 살인으로 마무리될 뻔 했다.
▼ 경찰의 뒤늦은 수습과 여론의 냉각
경찰은 뒤늦게 감찰관 2명을 광주 광산경찰서에 투입하고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장을 공무상 비밀누설과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고, 41명 규모의 특별수사단으로 확대 편성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경찰을 수사하는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검찰 전담수사팀의 진실 규명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전 광산서 서장인 경무관과 전 형사과장 경정을 공무상 비밀누설 및 증거인멸 방조 혐의로 입건하면서, 경찰 지휘라인 자체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
▼ 시민사회에 퍼진 불신
이번 사태로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떠돌던 ‘지역 경찰이 지인이나 특수관계인을 상대로 봐주기 수사를 한다’는 얘기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경찰청 본청 입장에서는 지역 일선 경찰서까지 하나하나 챙기기 어렵다는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전국적으로 분노를 샀고, 내부 비위 정황이 드러난 뒤에도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국외 출장 중 조기 귀국해 수습에 나섰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경찰관은 “소수의 일탈이 다수에 큰 피해를 끼친 사례이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 가족이 살인 사건의 증거 인멸에 가담하고, 다른 경찰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납득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경찰이 검찰과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려면, 먼저 조직 자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뿐 아니라 경찰 내부에서도 충격과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보완수사권 폐지라는 숙원이 사실상 위협받는 형국이다.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쳐보겠다는 비판을 경찰 스스로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