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중심 역할을 해온 곳이다. 조선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긴 세월이 쌓인 공간이라, 이 거리를 천천히 살펴보면 우리 역사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함께 떠올릴 수 있다.
최근에는 종로의 골목과 장소, 그 안에 남은 기억을 따라 쓴 영어 책 한 권이 나왔다. 이 책은 종로를 단순한 관광지로 보는 대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삶의 공간으로 바라본다.
책을 쓴 사람은 치과의사이면서 공공의료 행정가로 일해온 인물이다. 의료와 행정처럼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을 해왔지만, 글에서는 숫자나 제도보다 사람의 삶, 감정, 그리고 공간에 남은 시간의 흔적을 더 따뜻하게 담아낸다.
책 속에는 경복궁 지붕을 장식한 잡상 이야기부터,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딜쿠샤, 창덕궁의 달빛기행, 탑골공원, 청계천, 창신동 골목까지 종로 곳곳의 풍경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들이 이 책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가진 장면으로 다시 살아난다.
이 책은 여행 정보를 늘어놓는 안내서와는 다르다. 한 도시의 유산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기억으로 남고, 감정과 연결되며, 오래도록 숨 쉬는지를 들려주는 기록에 가깝다.
처음부터 영어판이 먼저 나온 데에도 사정이 있다. 저자는 원래 종로의 공기와 분위기, 오래된 돌담과 골목,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말로 먼저 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한글판은 바로 나오지 못했다. 그 사이 해외 독자와 편집자들이 먼저 관심을 보였고, 그 덕분에 이 책은 외국 독자들에게 서울과 종로를 소개하는 첫 창구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종로는 서울을 처음 찾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걷게 되는 대표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어판 출간은 외국 독자들에게 서울의 오래된 결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작이 되었다.
앞으로는 한글판도 선보일 예정이다. 저자는 종로를 걸으며 느꼈던 기억과 마음을 우리말로 더 깊고 차분하게 풀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전해질 이야기가 한국 독자들의 마음에도 조용히 스며들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