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은 두 사람의 무덤을 합치는 대신, 남양주 사릉과 영월 장릉을 상징적으로 이어 주는 행사를 계속 넓혀 가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사릉에서 키운 자주빛 들꽃을 장릉으로 옮겨 심으며, 함께하지 못한 두 사람의 마음을 꽃으로 잇는 뜻을 담았다.
관계자들은 왕릉은 오랜 시간 국가의 예법에 따라 자리와 형식을 지켜 온 유산이라며, 지금 와서 무덤을 옮기거나 합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에도 이런 문제를 검토한 적이 있지만, 의례의 무게와 현실적인 사정을 함께 고려해 지금의 모습으로 정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조선왕릉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어, 한 곳의 구조가 바뀌면 전체의 의미와 완성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신 두 왕릉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영월, 남양주, 종묘를 함께 둘러보는 답사·여행 코스를 만들고, 궁중문화축전 전후로 관련 문화행사도 이어 갈 예정이다. 두 능의 잔디 씨를 서로 길러 다시 덮는 상징 행사도 해마다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옮겨 심은 꽃은 맥문동, 구절초, 벌개미취, 비비추, 쑥부쟁이, 층꽃 등으로, 모두 보랏빛 계열의 꽃을 피운다. 이 색은 정순왕후의 삶과도 이어진다. 정순왕후는 궁에서 나온 뒤 힘겨운 삶을 살았고, 보랏빛 물감을 들이는 일로 생계를 이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번 들꽃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오래 남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릉과 장릉을 잇는 움직임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장릉에는 예전에 사릉에서 옮겨온 소나무 두 그루가 이미 자라고 있다. 이번에는 그 주변에 들꽃까지 더해지면서, 두 곳을 연결하는 상징이 한층 또렷해졌다.
역사를 돌아보면, 단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물러난 뒤 영월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정순왕후 역시 궁을 떠나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훗날 숙종 때 단종은 다시 국왕의 지위를 되찾았고 무덤도 왕릉으로 높여졌지만, 두 사람의 능은 각자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다만 종묘에는 두 사람의 신주가 함께 모셔져 있어, 현실에서는 떨어져 있어도 예의 틀 안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행사의 핵심은 무덤을 하나로 합치는 것보다, 떨어진 자리에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 가는 방식에 있다. 들꽃과 나무, 제례와 답사길을 통해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연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전하겠다는 뜻이다.